★ 2004년부터 ~ 1702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부모님이 동물학자라면 이 정도 사건에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된다. 한번은 부모님이 시장에서 구입한 커다란 상어의 배를 갈랐더니, 그 안에 사람 손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앨커트래즈처럼 탈출이 어렵기로 유명한, 바다 한가운데의 감옥 섬에서 희생된 죄수의 손이 아닌가 싶었다. 누군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거센 파도에 휩쓸려 속수무책으로 넓은 바다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 감옥에서 탈옥한 후 본토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그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종류가 아니었으니 손은 사람이 죽은 후에 우연히 상어 입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 이 상어는 속이 제거된 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킬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던 코둘라 고모를 다시 만났다. 고모는 내가 모든 동물을 학명으로만 알고..

한밤의 도서관 2020.09.08

언젠가는, 서점

저자본으로 창업 공간을 구하는 ‘시작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나는 권리금이라는 이상하고 나쁜 관행 때문에 세상의 많은 꿈과 가능성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삶의 어느 순간보다 많이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실상 나에게는 책방을 통해, 또 책을 판매하는 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저 책을 계속 만드는 일을, 책을 좋아하고 읽는 사람들 곁에서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책방이 지역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한다든지, 지역의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만드는 문화의 장이 된다든지 하는 거창한 목표는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지역 사회, 책방이 위치한 거리, 그리고 책방을 찾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

한밤의 도서관 2020.08.28

채식하면 뭐 먹어?

‘비덩주의’라는 합성어가 있는데 육수요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채식의 대안으로, 눈에 보이는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걸 말하는데요. 더보기 채식하면 뭐 먹어? 정말 쉬운 비건 레시피 그림북 텀블벅에서 펀딩한 책. 책 받자마자 ‘독립출판이로구나!’ 느껴짐. 왜냐고? ㅋㅋ 표지에 지은이 이름도 없지요. 인쇄가... 약간 색이 나갔어 ㅋㅋㅋㅋㅋ (부제목인 노란 글씨가 안 보여...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같이 동봉된 엽서에 채개장 레시피 보고 감탄함. 육개장 진짜 좋아하는데, 채개장도 맛있을 것 같다 + 프롤로그에 2019년에 도서관에서『아무튼 비건』을 빌려보시고 비건 지향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하셨는데 너무 멋있다

한밤의 도서관 2020.08.27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대수롭지 않은 글을 쓴다. 별 것 없는 그림을 그린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갈 것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선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고, 결과물이다. 운이 좋아 먹고 살고는 있지만 위대한 것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사라지는 건 물론, 당장에라도 대체할 사람은 많다. 나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부모님은 인간성이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하시지만, 그저 타인과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적을 뿐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일도 거의 없다. 심술 맞은 고슴도치 같은 삶을 살았다. 당연히 친구도 매우 적다. 삼십대도 슬슬 끝나가는 즈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한둘밖에 되지 않는다. “푸딩을 한번 먹어봤습니다.” 나는 말했다. 그는 ‘푸우디잉?’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한밤의 도서관 2020.08.24

나는 절대로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출근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출근한 미래에서 퇴근하고 싶다는 감정이 과거로 거슬러 온 것 아닐까?” - 초광속 통신의 발명 中 나를 포함한 넷은 너무나 전형적이라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내향적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구석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선호하고, 그러다 보니까 근처 사람들한테 “얘는 하는 짓 보니 영재의 싹이 있다.”는 큰 오해를 받게 되고, 그 오해를 딱히 수정할 생각도 없어서 시키는 공부를 했는데 정말 머리가 좋지는 않아서 의대나 치대 진학은 실패하고, 약대나 갈까 생각하면서 화학공학이나 생물학 따위를 전공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꽤 적성에 맞아서 어영부영 눌러앉았다가 결국 연구소에 계약직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면서,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

한밤의 도서관 2020.08.22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우선은 정년 후의 생활을 상상하면서 ‘재미없어 보이는 일’을 적어보세요. 그런 다음 그 재미없어 보이는 일을 피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 겁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게 싫다면 갈 곳을 만들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재미없어 보이는 일을 하나하나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바꾸어나가는 것이지요. 그 아이디어를 찾는 데에 필요한 것이 바로 호기심입니다. 정년 후에도 어떻게든 호기심만은 잃지 말아주세요. 호기심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기나 어린아이가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지요. 하지만 사회인이 되고 주변 사람의 기대나 주어진 역할을 우선시하다 보니 호기심이 뚜껑을 아예 닫아버린 사람이 많지요. 우선..

한밤의 도서관 2020.08.21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범죄소설 작가는 유쾌하지 못한 재주 탓에 작품마다 적어도 한 명은 욕을 얻어먹어도 싼 인물을 창조할 의무가 있으며, 이따금 착한 사람의 공간을 침범한 피비린내 나는 범죄행각을 불가피하게 그려야 할 때도 있다. 리밍이 코델리아의 기차표를 샀고 수하물 보관소에서 휴대용 타자기와 서류가방을 찾아오더니 일등석 열차를 향해 앞장서 걸었다. “나는 기차에서 할 일이 있어요. 혹시 읽을거리라도 있나요?” “괜찮아요. 저도 여행 중에 얘기 나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토머스 하디의 《트럼펫 주자》도 갖고 있고요. 가방에 늘 페이퍼백 한 권은 넣고 다니거든요.” 인간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존재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왜 젊음을 질투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젊음은 특권의 문제가..

한밤의 도서관 2020.08.20

이파브르의 탐구생활

귀농을 시작했을 때, 당연히 마당이 딸린 단층 시골집에 살 거라 상상했다. 시골에 빈집이 점점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며 저 가운데 한 곳에 살 수 있겠지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이나 시골이나 집이 문제였다. 모든 물건은 쓰다 보면 세월의 흔적이 남는다. 구멍이 나거나 바래거나 닳거나 깨지거나 금이 간다. 그것들을 수리해서 이어 쓴다면, 새로이 만드는 기술을 어렵사리 익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힘들지만, 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건 보다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새는 ‘되살리는 기술’에 더 큰 관심이 생겼다. “잡곡이라고 하지 말고 밭곡이라고 해. 우리 어머니는 옛날부터 그렇게 불렀거든!” 수수, 조, 보리 등을 싸잡아 이르는 잡곡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 때..

한밤의 도서관 2020.08.19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

한 가지 깨달은 점은 무엇이든 이사 전에 미리 사두면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이사를 할 때까지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생각도 많아진다.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이 새 집의 구조와 맞지 않거나 필요 없어지는 일이 생긴다. 내게 있어 진정한 ‘내 집’이란 극단적으로 말해서 ‘고독사’가 가능한 집이다. 전기도 끊기고 수도가 끊기더라도 나만 아무렇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집. 그 공간에 웅크리고 살다가 누구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 집. 누군가가 찾아와 관리비를 내라고 독촉하지도 않고, 반상회에 나오라고 안내문을 전하지도 않는 집. 길에는 수많은 전단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신축 빌라’ 분양을 알리는 전단지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빌라들은 하나같이 모두 놀랍다. 역세권에 위치해 있으며 ‘왕 테라스’..

한밤의 도서관 2020.08.18